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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高麗時代)


  • 나세(羅世)
    나세는 외침이 잦았던 고려말에 무장으로서 맹활약을 하였으며, 특히 왜구격퇴에 공이 많았으며 연안군에 봉해졌다. 특히 우왕(禑王) 6년에 해도원수(海道元帥) 나세(羅世)는 상원수(上元帥) 심덕부(沈德符)는 서해도원수(西海道元帥)·부원수(副元帥) 초무선(崔茂宣)은 화통도감 제조(火筒都監 提調) 등과 함께 고려연합함대인 전함 100척으로 왜선 500척을 완파하여 왜구의 기세를 크게 꺾은 진포대첩(鎭浦大捷)을 총지휘(總指揮)하였고, 그 뒤 문화평리(門下評理)가 되었다가 왜구가 다시 득세하여 수도 개성을 위협하자 수도방위의 좌일선인 東江(임진강) 都元帥를 지냈으며, 다시 해도원수를 맡았을시에는 동해에 있는 축산도(丑山島) 출동명령에 불복하다가 투옥되기도 하였다. 당시 고려함대가 축산도로 출동하려면 왜구가 장악하고 있는 남해안을 통과하여야 하였다. 이 사건은 훗날 한산도에 있던 이순신 장군이 부산포 출동명령을 거부하다가 투옥되는 상황의 선례가 되었다. 나세는 조선조에서는 문하부참찬을 지내다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를 들어 사직하였다. 그러다가 왜구가 다시 서해안까지 침범하매 태조2년에 왕명을 받고 74세의 고령으로 출전하였다가 태조 6년에 78세로 군영에서 순직하였다.

  • 나중우(羅仲佑)
    호는 낙천와(樂天窩), 공민왕때 급제, 전교시령, 예문관 지제고, 춘추관 편수관 등을 역임하였으나 고려의 국운이 다하고 조선조가 개국하매 공은 절의를 지켜 김제로 낙향하였다. 이에 태조 이성계가 우의정으로 세차례나 불렀으나 “忠臣은 不事二君”이라 하면서 조정에 나가지 안았다.

  • 나   부(羅富) : 始祖 羅州羅氏淵源에서 說明
  • 나득규(羅得규) : 後1世 高麗 令同正
  • 나중윤(羅仲允) : 2世 高麗 令同正
  • 나송기(羅松奇) : 3世 高麗 令同正
  • 나수영(羅守永) : 4世 高麗 진사(進士)
  • 나   위(羅位) : 호조전서(戶曹典書)
  • 나   계(羅桂) : 중서시랑(中書侍郞)
  • 나   석(羅碩) : 금양군(錦陽君)봉작(封爵)
  • 나   세(羅世) : 연안군(延安君) 앞에서 별도 설명
  • 나   원(羅源) : 사온서직장(司온署直長)
  • 나동길(羅東吉) : 증주목사(甑州牧師)
  • 나경세(羅經世) : 감역(監役)
  • 나중우(羅仲佑) : 樂天窩公 神道碑에서 별도 說明
  • 나   진(羅璡) : 공조전서(工曹典書)
  • 나공언(羅公彦) : 羅城君 不조廟에서 별도 說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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