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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시조, 후1세~후5세 단
사우
부조묘
삼강문 및 삼강비
정려
신도비
서원
 

 

삼강문(三綱門) 및 삼강비(三鋼碑)

 

1.삼강문(三綱門)

 羅州羅氏 直長公派의 한 집안에서 三代에 걸쳐 八旌이 배출되어 이를 기리기 위해 나주시 남내동에 三綱門이 세워져 있다.

 삼강은 儒敎道德의 핵심인 三綱五倫에서 따 온 말로서, 삼강문은 8정인 2효. 2충. 4열(2孝. 2忠 4烈)를 기리기 위한 정려(旌閭)다. 1544년(中宗 甲辰)에 금호공 사침(士침)이 20세에 효행(孝行)으로 생정(生旌)되어 정려(旌閭)를 세웠다. 이를시작으로 祖.子.孫등 3世 팔정(八旌)이 배출되자 효자문(孝子門)을 삼강문(三綱門)으로 개축(改築)하였다. 나주시의 삼강문과 동일한 삼강문이 나주시 반남면 대안리에 건립 되여 이곳 후손들의 경조정신(敬祖精神)을 함양(涵養)하고 자기수련(自己修練)에 힘쓰고 있다.

 효자 금호공 나사침(羅士침) : 16세때 손가락을 잘라 모(母) 병환을 치유(治癒)하매 왕이 듣고 명정생려(命旌生閭)하였다 宣祖朝에 도백(道伯)의 천계(薦啓)로 통훈대부(通訓大夫) 이성현감(尼城縣監)을 하고 제자(諸子) 종훈으로 증숭정대부.의정부좌찬성(贈崇政大夫.議政府左贊成)겸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하다.

 충신 소포공 나덕명(羅德明) : 금호공의 長子로 1579년(宣祖己卯)에 진사(進士)하고 승훈랑(承訓郞)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하다. 임진왜란(壬辰倭亂)에 함경도.경성에서 왜적(倭敵)을 크게물리치고 공을세웠다. 1803년(純祖癸亥)에 예조판서(禮曹判書) 계청(啓請)으로 포충특명정려(포忠特命旌閭)하다.

 열녀 하동정씨(河東鄭氏) : 금호공 4子 덕현의 妻로 정유왜란(丁酉倭亂)에 적이 급하게 처들어오므로 시매(媤妹) 나씨와 치마띄로 같이몸을묶고 주룡강에 투신(投身)입절하여 1623년(仁祖癸亥)에 명정(命旌)되었다.

 열녀 나주나씨(羅州羅氏) : 금호공의 女이며 충의위(忠義衛) 윤항(尹沆)의 妻로 정유왜란에 올케 하동정씨와 함께 입절(立節)하여 1623년에 명정되었다.

 충신 나덕헌(羅德憲) : 부조묘(不조廟) 참조(상세히  수록되었음)

 효자 나득소(羅得素) : 금호공의 4자 덕현의 3자로 어려서부터 효성(孝誠)이 지극(至極)하더니 19세에 부상(父喪)을 당하여 3년 시묘(侍墓)중에 죽으로 연명(延命)하다가 비통(悲痛)해 한 끝에 자진(自盡)하였다 1623년에 조정에서 사실을 듣고 명정(命旌)하였다.

 열녀 언양김씨(彦陽金氏) : 금호공의 6子 덕현의 장자 선무랑(宣務郞) 守素의 妻로 장무공(壯武公) 金浚의 女니 준이 안주목사로 정유노란(丁酉虜亂)에 城이 함락(陷落)되자 자분사(自焚死)하였다 이때 김씨는 우귀(于歸) 전이라 2통의 유서(遺書)를 2 奴에게 주어 夫君에게 전하도록 하였다 1623년에 명정(命旌)되었다.

 열녀 나주나씨(羅州羅氏) : 금호공의 2子 덕준의 女로 주부(主簿) 金잡의 妻이니 임진왜란으로 夫妻가 서로 잃어버린지라 마땅히 홀로 살수없다 하여 스스로 목을매어 절사(節死)하였다 1623년에 명정(命旌)되었다

※ 소재지 : 나주시 남내동15ㅡ1

 

2.삼강비(三綱碑)

 羅州羅氏 延安君派의 한 집안에서 四代에 걸쳐 忠, 孝, 烈 등 三綱이 배출되었으며, 이를 기리기 위해 三綱碑가 세워져 있다.

 孝子 연봉공 나광연(羅光輦) : 연안군 파조인 해도원수 나세의 14세 손(후19세)으로 부친이 억울하게 하옥됨에 혈서를 써서 대신 옥살이 할것을 원하니 고을사또가 효성에 탄복하여 특별히 방면하였었고, 모친 병환이 위급함에 손수 시탕하고, 대변을 맛보아 병세를 진단하였으며, 모친이 사경에 이르매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마시게 한것이 형 광두(光斗)가 3차례, 연봉공이 6섯차례나 하여 모친의 생명을 3일간 더 연장케 하였다. 임금이 연봉공의 효심을 알고 이조참의직을 증직하고 포전을 하사하였다

 忠臣 기재(麒在) : 연봉공의 장자로 충효의 성품이 선천적으로 타고나 어버이를 하늘과 같이 섬기었고, 임금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반드시 상복을 갖추어 입고 북향제배하며 슬피 통곡하며, 상사의 예를 지키는 등 삼강오륜의 정신을 잊지 않았다. 공의 애국, 충효의 행실이 조정에 알려져 통정대부 이조참의를 증직하였다

 烈女 구씨 부인(龜氏婦人) : 평해구씨로 나씨가문에 출가하였다. 기재공의 아들인 석양(錫亮)공의 막내아들 영하(暎河)공의 처(기재공의 손부)가 되었으며, 시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고 남편을 지극히 섬기었으나, 영하공이 4년간의 긴 병마에 시달리고 가세 빈곤하자, 구씨부인은 여러차례 머리를 잘라서 약을 구입하여 시탕하고, 한 밤중에 정화수를 떠 남편의 쾌유를 기원했으며, 엄동설한에도 연못에 나가 얼어붙은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아 봉양하기를 하루도 거른적이 없으며, 눈덮인 산에서 얼어붙은 땅을 파 헤치고 약초를 구하니 하늘이 감동하였음인지 엄동설한에 신령스런 풀이 우물에서 솟아나오니 주위사람들이 변함없는 구씨부인의 효열을 상징하는 것이라 하며, 부인의 행실에 크게 감동하였다. 부인의 간호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부인은 정성으로 장례를 치렀으며, 장례후 3일이 지나는 날 약을 마시고 남편의 뒤를 따랐다. 후일 구씨부인의 烈行이 군지(郡誌)의 삼강록에 기록되었고, 조정에서는 구씨부인에게 정부인을, 남편 영하공에게는 내무현판이란 벼슬을 증직하였다

※ 소재지 : 충남 서천군 마서면 순제동(연안군 묘 우전방 70m) (마서면 남전리 칠전마을에서 2006년 10월 이전, 서천군에서 비각 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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