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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典書公 羅位의 아들 羅東吉은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로 재직하던중 왕지(王旨)를 거스려서 外職인 증주목사(甑州牧使)로 나갔으며, 이를 계기로 자손이 평안도 일대에 거주하게 되었다. 나동길의 長子 나득(羅得)은 사옹원참봉(司甕院參奉)을 지냈고, 그의 아들 나유선(羅宥善)은 도천참봉(道薦參奉)이었다. 나동길의 차자 나득춘(羅得春)은 관직은 없으나 맨처음 평남 성천군에 사셨으므로 成川公이라 하며, 그의 아들 羅允文은 무과에 급제하여 어매장군(御梅將軍)이 되었다.

  • 侍郞公 羅桂의 아들 나경세(羅經世)는 감역(監役)을 지냈으며, 그 아들 나신(羅紳)은 文科를 거쳐 호조참판(戶曹參判)을 지냈고, 그 아들 나사고(羅師古)는 세종 23년에 문과급제하여 홍문관수찬과 한성판윤 등을 거쳐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그의 아들 나치온(羅致溫)은 음직(蔭職, 科擧試驗을 거치지 않고 官職에 나감)으로 선공감역(繕工監役)에 나아간 뒤 광주유수(廣州留守)를 歷任하였다.

  • 錦陽君 나석(羅碩)의 長子 나중우(羅仲佑)는 고려 공민왕시 문과를 거쳐 중정대부. 전교사령 겸 춘추관편수관과 예문관지제고를 역임하였다. 조선조가 고려조를 멸하고 개국하매 관직에서 물러나 향리인 김제로 낙향하였는데 이태조가 우의정으로 몇차례나 불렀으나 끝내 응하지 않았다. 錦陽君 羅碩의 次子 나명우(羅明佑)는 임피현령을 지내고, 정종조에 문과를 거쳐 행홍문관교리, 병조판서를 지냈다. 後7世인 나중우의 장자 羅晉康은 해남현감을 지냈고, 차자 羅致康은 조선조 초에 장성현감과 곡성현감을 지냈는데, 개국초의 어지러운 시기에 백성을 편안히 다스리니 고을사람들이 선정비를 세웠으며, 3자 羅得康은 세종원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선천군수와 면천군수를 지냈고 모친상을 당하자 휴직하고 3년간 시묘하였다. 그 후 우정언지제고, 이조좌랑, 의금부지사 등을 역임하고 귀향하였는데, 왕이 부르매 다시 관직에 나아가 이조판서 겸 세자시강원 찬선을 지내고 노병으로 퇴사하였다. 羅明佑의 장자 羅俊은 세종3년에 문과를 거쳐 홍문관교리를 지냈고, 나명우의 차자 羅偉는 進士였다. 後8世인 나진강의 아들 羅希老는 사포시별제(司圃寺別提)를 지냈으며, 나득강의 아들 羅寅은 내자시윤(內資寺尹)과 해미현감(海美縣監)을 지냈고, 나준의 장자 羅士義는 한성판윤을 지냈고, 나준의 3자인 羅永義는 左副承旨를 지냈다.

  • 延安君 羅世의 차자 나인은 고려조에서 참봉을 지냈다. 나인의 장자 나찬(羅찬)은 태종조에 進士를 했으며 차자 나인주(羅仁柱)는 성조판서동지상사(性曹判書冬至上使)를 지냈다. 나찬의 장자 나효기(羅孝基)는 세종조에 參奉을 하였다.

  • 直長公 羅源의 아들 나진(羅璡)은 고려조에서 工曹典書를 지냈으며 조선조에서는 李太祖가 제의(提議)한 戶曹判書를 거절(拒絶)하고 羅州에 은거(隱居)하였고, 나진의 아들 나공언(羅公彦)은 전노시정(典農寺正)을 지내고 우왕시 왜구가 지리산과 무등산 등지로 처들어오자 결사대를 이끌고 이를 격파하는 등 功이 많아 나성군(羅城君)에 봉해졌으며, 나공언의 長子 나설(羅設)은 봉훈랑도강감무(奉訓郞道康監務)를 지냈고, 次子 나집(羅집)은 식목도감녹사(式目都監綠事)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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