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종친회 유  래 유적지 인  물 커뮤니티  
아이디
비밀번호
아이디/비밀번호 분실
 
유 래
연원
본관 연혁
분파명
주요 세거지 변천
씨족사
씨족의 행적
세계도
행열자표
지파별 현황
나씨의 유래
 
씨족사(氏族史)


羅州羅氏는 高麗 正義大夫監門衛上將軍을 지낸 나부(羅富)를 始祖로 하는 姓氏이다. 나부는 중국에서 건너오셨으며, 어질고 덕이 많다고 하였다. 시조의 동도설에 관해서는 몇가지 설이 있으나 나부(羅富)가 송(宋의) 봉명사신(奉命使臣)으로 고려에 왔다가 돌아가기 전에 송이 망하자 돌아가지 못하고 여황(현 나주군)에 세거하였으며, 羅州를 本貫으로 하였다는 설이 가장 유력(有力)하다.

나주나씨의 분파는 시조인 나부(羅富)의 후계 3~5대가 불분명하여 득규공(得규公)을 후1세(後一世)로 하고 있으며, 영동정(令同正)을 지낸 후2세(後二世) 중윤공(仲允公)과 후3세(後三世) 송기공(松奇公)까지는 독자로 내려오다가 진사(進士)를 지낸 후4세(後四世) 수영공(守永公)이 위(位), 계(桂), 석(碩), 세(世), 원(源) 등 다섯 아들을 두었는데, 이들 다섯 아들을 파조(派組)로 하여 5대파로 나뉘어 지며, 각 파는 다시 분파가 계속되어 현재는 70여개에 이른다. 5대파란 나위(羅位)의 후손인 전서공파(典書公派), 나계(羅桂)의 후손인 시랑공파(侍郞公派), 나석(羅碩)의 후손인 금양군파(錦陽君派), 나세(羅世)의 후손인 연안군파(延安君派), 나원(羅源)의 후손인 직장공파(直長公派)를 말한다. 파조(派組)의 행적을 개관(槪觀)해 보면,

첫째인 羅位는 호조전서(戶曹典書)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으며, 금양처사(錦陽處士)라 불렀고, 나주에 퇴거하였다.

둘째인 羅桂는 중서시랑을 지냈다.

셋째인 羅碩은 사온서직장영동정을 지내고 錦陽君에 봉해졌으며, 나주에서 김제로
옮겼고, 후손이 그 곳에 세거하였다.

넷째인 羅世는 고려말의 대표적 무인중 한사람이다. 그는 공민왕 초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으며, 홍건적 침입때 출전하여 2등공신이 된 것을 비롯하여 경상도 부원수, 전라도 상원수, 서해도 원수, 해도원수, 경상도조전원수 등을 거치면서 주로 왜구토벌에 진력하였으며 연안군에 봉해졌다. 우왕(禑王) 6년에는 海道元帥로서 심덕부 최무선과 함께 전함 100척을 이끌고 왜선 500척을 완파하는 진포대첩(鎭浦大捷)을 총 지휘하였으며, 그 후 문하평리(門下評理)와 동강도원수(東江都元帥, 현 수도방위사령관) 등을 지냈고, 朝鮮朝에서는 문하참찬(門下參贊)이 되었으나 나이가 많아 치사(致仕)하였는데 왜구(倭寇)가 바다를 침범하자 노령에도 불구하고 출전하였으며 군문(軍門)에서 78세로 순직(殉職)하였다.

다섯째인 羅源은 공민왕시 사온서직장동정(司온署直長同正)을 지냈다.



 
  Copyright(C) 나주나씨중앙종친회 All Right Reserved.